여수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석유화학장치산업 공사현장에서 비계조공 및 비계공으로 일하면서 석면에 노출된 건설노동자의 폐암이 산업재해로 인정됐다.

보호구 없이 일해 온 12년

민주노총 법률원 권동희 노무사는 24일 서울행정법원이 여수지역 건설노동자 이재빈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를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이씨는 여수산업단지의 석유화학장치산업 공장의 신설, 증설 및 정비공사 현장에서 89년부터 2005년까지 비계조공 또는 비계공으로 일해 왔다.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인 비계공 이재빈 노동자의 2007년 모습. ⓒ 사진제공=여수지역건설노조

이재빈 씨가 일했던 비계발판에서는 용접작업도 진행돼 용접포에서 나온 석면가루가 떨어져있었다. 이씨는 또 석유화학장치산업 설비에 쓰인 배관 해체, 정비작업도 했는데 배관에는 석면이 함유된 단열재나 석면테이프가 쓰였다. 80년 말, 90년대에는 석면 위험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라 이씨는 마스크 없이 일하거나 면마스크 정도가 보호구의 전부였고 2001년 즈음에야 방진마스크를 착용했다.

법원은 이재빈 노동자의 작업내용, 노출경위, 노출기간이 16년에 이르는 점에서 석면은 물론 석유화학공장이라는 특성상 폐암을 발생시키는 니켈이나 크롬 등에도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1989년경부터 2000년경까지 약 12년 동안 제대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 작업 중 노출된 석면가루의 상당량을 그대로 흡입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석면노출 정도와 기간이 폐암을 발병시키거나 급격하게 악화시키기에 충분하다며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여수지역건설노조는 이재빈 노동자의 산재인정을 촉구하며 2007년 4월 근로복지공단 여수지사에서 점거농성까지 벌였다. ⓒ 사진제공=여수지역건설노조

건설노동자 직업성 질환 인정에 긍정영향 기대

여수지역건설노동조합 이정진 노동안전국장은 “건설노동자의 직업성 질환 인정에 새로운 입장이 마련된 판결”이라며 이번 결과가 “2009년에 신청한 또 다른 비계공의 폐암 산재와 보온공으로 일하다 폐암으로 사망한 건설노동자의 유족보상 신청에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씨의 행정소송 진행을 담당했던 권동희 노무사는 “비계공의 석면노출은 인정이 됐지만 노출량이 미비해서 산재인정이 안됐던 사건”이었다며 “여수산단의 모든 폐암 사례에서 비계공의 석면폐암 인정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