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재개발계획' 막아낸 잭 먼디는 누구인가


30여 년 동안 '시드니 환경지킴이'로 살아온 잭 먼디(80). 그는 건설노동자 출신으로 1970년대에 추진되었던 '시드니 재개발계획'을 끝까지 막아낸 NSW주 건설노동조합 리더였다.

그가 재개발계획을 철회시킨 시드니 42개 지역은 TV 퀴즈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 질문자가 "다음 4개 지역 중에서 잭 먼디와 관련이 없는 지역은?"이라고 묻는 방식이다. 1970~80년대를 시드니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쉽게 맞출 수 있는 퀴즈다.

그중에서도 다음 두 곳은 시드니 최고의 관광명소가 됐다. 오페라하우스 건너편 위치한 '호주 첫 동네' 록스(The Rocks)에는 해마다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오고, 센테니얼파크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심공원으로 남았다.

잭 먼디는 그와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웨스턴시드니대학교에서 도시공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호주 연방정부로부터 '명예로운 시민' 훈장까지 받았다. 그의 환경운동 성공 사례는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됐고,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담은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가 TV를 통해 반복적으로 방영된다.


건설노동자에서 환경 지킴이로

호주 북단의 작은 광산촌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먼디는 여섯 살에 어머니를 잃는 등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살에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친 그는 건설노동자가 됐고, 타고난 리더십으로 NSW주 건설노동조합 리더가 되었다.

그는 도시재개발계획을 무조건 부정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 또한 무분별한 건설공사로 역사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철거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설득작업을 펼쳤다. 투쟁은 언제나 그 다음 단계였다.

먼디는 재개발이라는 허울의 뒷전에서, 별다른 대책도 없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는 저소득층의 비애를 외면하지 않았다. 정부와 개발회사를 상대로 한 설득작업이 실패하면 가차 없이 '현장 스톱!'과 '건설노동자 전면 파업' 등의 방식으로 강경투쟁에 나섰다.

처음엔 노동조합의 상투적인 반대운동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의 헌신적인 활동과 논리적인 설득에 동료 건설노동자들이 뜻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업 등으로 생계에 타격을 받는 건설노동자 처지에서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다. 건설업체가 그 약점을 최대한 활용한 건 두말할 나위 없다.


▲ 1974년 시드니 재개발에 반대하고 있는 시민들.


철거반 노동자들의 눈물겨운 투쟁

위에 언급한 록스는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다. 1788년에 백인죄수들이 도착하여 바위투성이의 언덕에 식민지를 만든 것. 그러다 보니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우체국, 경찰서, 호텔, 선술집 등이 남아있다.

1960~70년대에 일어난 시드니 건설 붐 때문에 록스의 유서 깊은 건물들이 헐릴 위기에 처했다. 그때 건설 노동자, 그중에서도 철거반 노동자들이 철거반대운동에 나섰다. 그 건축물들이 사라지면 호주의 역사도 함께 사라진다면서 흙 묻은 작업복의 노동자들이 철거작업을 거부한 것이다.

그 당시 투쟁을 이끌었던 잭 먼디는 "한마디로 전쟁이었다"면서 "개발업자들이 동원한 불량배들과 싸우는 것도 힘들었지만,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노동자들의 갈등이 아주 심했다"고 회고했다.

전국 단위 노동조합이 지원했지만 부분적일 수밖에 없었고, 건설노동자들의 희생과 협조 속에서 오랜 투쟁이 이어졌다. 특히 철거반 노동자들은 생계가 막막해지면 교대로 다른 현장으로 옮겨서 일을 하거나, 너나 할 것 없이 저축했던 돈을 털어서 나누어 썼다.


'도시환경운동'의 세계적인 선구자가 되다

록스 재개발 반대투쟁은 세계 최초의 '도시환경운동'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은 그런 용어조차 알지 못했다. 다만 호주 식민지 시대의 역사가 오롯이 고여 있는 록스 지역의 올망졸망한 집들이 허물어지는 걸 반대했을 뿐이고, 그 집에 살고 있던 도시빈민들을 불쌍하게 여겼을 뿐이다.

또한 그들은 건설노동자가 도시환경을 지키는 최전방의 전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도시 환경운동'은 전적으로 투쟁 현장에서 우연하게 얻은 영감의 결과였다. "건설노동자, 그중에서도 철거담당 노동자가 움직이지 않으면 건물은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는다"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세계적인 환경운동의 지렛대가 됐다.

'도시환경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동안 도시 바깥의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만 주력했던 환경운동이 도시지역으로 확대된 것.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를 이루는 도시를 보존하자는 취지였다.

오랫동안 환경운동의 사각지대로 여겨졌던 호주가 세계 환경운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도시환경운동'이 성공하면서부터다. 1960년대 말부터 "미래 세대를 위해서 자연환경을 물론이고, 역사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고건물을 보존하자"고 목소리를 높인 잭 먼디는 1970년대의 뉴스 헤드라인 메이커였다.


▲ 시드니올림픽 경기장이 지어질 예정이었던 센테니얼파크.


'살아있는 전설' 잭 먼디의 회고

잭 먼디는 1년에 100차례 이상 환경문제 강연 연사로 초대된다. 특히 시드니 재개발을 막아낸 42곳에서는 대부분 '회고의 날(Remembrance Day)' 행사를 갖는데 먼디씨는 그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다음은 그의 연설 중의 한 대목이다.

"1970년 당시, 시드니 녹지대가 빌딩숲으로 바뀌는 걸 보고 도시환경운동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그린 밴스(Green Bans)를 창안했다. 세계 최초의 도시환경운동이었다. 투쟁방법은 간단했다. 철거반이 작업을 하지 않으면 시드니 재개발은 불가능했다.

건설노동자들에게 역사와 환경에 대한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삶의 질'을 거론했다. 건설노동자도 녹지대가 없는 건축물에 대한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다는 걸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1970년부터 2000년까지, 건설노조는 약 30년 동안 도시환경운동에 주력했다. 그런 다음에 10년 가까이 녹색당을 지원하여 정치세력화를 도모했다. 정치적 힘이 없으면 환경운동도 한계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지금 환경정책의 최전선인 지방의회에 녹색당의 진출이 눈부시다. 현재로서는 녹색당이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