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다단계하도급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환경, 그리고 노조탄압….

한국의 건설노동자들만 겪는 어려움은 아니다. 필리핀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국가에 있는 건설노동자들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체스터 암파로 필리핀건설노조 조직활동가.

건설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산별노조인 국제건설목공노련(BWI)은 최근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한진중공업의 수빅만조선소 건설현장을 주목하고 있다. 이 지역의 건설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위해 필리핀건설노조를 지원하고 있다.

수빅만조선소의 산업안전·다단계하도급·노조탄압 등의 문제는 이미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지난 8일 민주노총의 아시아지역 노조활동가 교육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체스터 암파로(23·사진) 필리핀건설노조 조직활동가를 출국 하루 전날인 지난 16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 방문이 지난 4월에 이어 두 번째라고 했다.

“열악한 상황 나아지지 않았다”

체스터 암파로씨는 필리핀 수빅만조선소 건설현장의 현지사정이 몇 개월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최근엔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한진중공업의 하청업체들은 여전히 안전모 같은 기본 보호장비조차 지급하지 않습니다. 임금도 낮아 노동자들의 불만은 여전합니다.”

필리핀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업주가 최소한의 안전장비를 지급해야 한다. 그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안전모를 직접 사서 쓴다”고 말했다.

노조 설립과 함께 해고된 조합원 17명의 복직투쟁도 현재진행형이다. 필리핀 노동부에 구제신청을 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부당해고 판정이 나기까지 최소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는 특히 “수빅만에서 강제로 쫓겨난 철거민들은 여전히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상태”라고 전했다.

필피핀에서도 조직사업 어려워

필리핀 수빅만조선소에는 정규직·비정규직을 포함해 약 1만2천명의 노동자가 일을 하고 있다. 정규직은 5천~6천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필리핀건설노조는 1천500여명을 조직했다. 필리핀 현지법에 따르면 최소한 정규직의 20%는 조직해야 노동부로부터 노조 설립필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회사측이 그나마 남아 있는 정규직마저 비정규직으로 만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국 방문기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플랜트건설노조 조직활동가들과의 만남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플랜트건설노조 울산지부 사무실에서는 아시아지역 노조활동가 교육 참가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2005년 울산지역 건설노동자 투쟁의 한계와 성과를 주제로 간담회가 열렸다. 15일에는 건설산업연맹이 주최한 건설기능경기대회에서 한국의 상황을 상세히 듣기도 했다.

한국 활동가에게서 영감 얻어

“한국과 필리핀의 상황은 참 비슷해요. 조직하기 어려운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을 어떻게 조직했는지 그들의 경험을 들었습니다. 필리핀에 돌아가 조직사업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체스터 암파로씨의 직함은 ‘조직활동가’이지만 조직뿐만 아니라 수빅만조선소 현장 노동자들에 대한 홍보·교육·세미나·기획 등의 업무도 총괄하고 있다. 해고된 조합원들과 함께 조직사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울산에서도 플랜트 노동자들이 많은 탄압을 받았지만 결국 단결하지 않았습니까. 비정규직인 건설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은 한국과 필리핀 조직활동가 모두에게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한국의 활동가들은 해냈잖아요. 그들처럼 저도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