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수 처장님.

가을색이 차츰 깊어 집니다.
15척 담장안에는 겨울준비로 분주합니다.
가을이 주는 애잔함, 쓸쓸함, 낭만등을 생각해내는 것은 아마도 사치일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이곳은 너무 춥고, 가슴은 풀이 다 말라버린 대지처럼 황량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간 잘 계셨는지요.
연맹의 위원장님을 비롯한 동지들도 모두들 건강하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동지들의 염려와 배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래 지내다보니 게으름이 약간 늘었습니다.
곧 겨울이라 찬물에 머리감기가 싫어서 빡빡 밀어버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긴 한숨으로 맞이했던 2008년이었는데 역시나 2MB는 전혀 실망을 안겨주지 않는군요.
세월이 지날수록 시름이 깊어집니다.
아마도 이 정부 임기가 끝나는 2012년쯤에는 이나라 국민 절반은 화병으로 쓰러지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지난 8개월의 삶이 던져준 민중들의 아우성이 말해주고 있는데 이것보다 더나은 지수나 지표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더욱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보수우익의 도발에 대응해서 싸울 수 있는 세력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장님.
연맹도 이제는 올해의 사업들을 서서히 정리하고 평가하고 더욱 알찬 내년을 기약하는 그런 시기가 되었군요.
플랜트 쪽도 포항은 타결됐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만 역시 다른 지부들도 비슷하게 마무리 될 것 같은 예상을 해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오늘이 아니라, 오늘의 역사를 가지고 내년은 어떻게 발전시켜 낼 것인가가 중요하겠지요.
제가 십수년 동안 노조활동이던 노동운동이던 해오면서 느낀 것은, 평가하는 철이 되면 열심히 평가하고 그에 따른 반성을 하지만 그것들이 별로 실천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철저한 평가와 반성속에서 반드시 실천될 수 있도록 올해를 정리했으면 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없지만요.

요즘은 경제가 대세라 저도 경제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새로운 세상을 보는 듯 합니다.
감옥이 제게 베풀어 주는 은혜라고 할까요.

이만 줄입니다.
연맹 동지들 늘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2008년 10월 7일
김천교도서에서
건설노동자 이 지 경 드림.


* 아직 입에 '유기수 처장님'이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찬바람이 불면 감옥에 있는 동지들의 건강이 더 걱정이 됩니다.
동지들의 따뜻한 동지애로 감옥에 있는 동지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