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노동달인_황금모(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 대의원)
‘가짜’(폼)를 ‘진짜’(건물)로 바꾸는 건설의 주역

총선이 내일이다. 선거 때만 되면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바로 건설일용노동자들. 매번 ‘참정권’ 문제로 이슈가 된다. 투표하러 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 일당을 내던지고 투표장으로 향하기 어렵다는 얘기. 비 때문에 공친 날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 최근 건설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서 부분적으로 개선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현장에서는 그대로다.

‘체불임금’ 문제도 여전하다. 최근 이로 인해 맞아죽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일명 ‘쓰메끼리(유보임금)’라는 구조적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노조 조합원에 대한 체불임금이 다소 완화되고 있는 정도다. ‘산업재해’ 역시 건설노동자들을 위협하는 문젯거리다. 다치거나 죽지 않아도 ‘골병’들긴 매한가지. 평균수명이 짧은 건 당연. 이에 건설일용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봤다. <편집자 주>

‘폼’으로 시작해 ‘폼’으로 끝나는 건설노동

지난 4월7일 월요일 아침6시 안산 반월공단이 왠지 썰렁하다. 바람까지 차갑다. 날씨는 잔뜩 흐린 편. 땅이 젖은 걸 보니 새벽에 비까지 내린 모양이다. 으스스한 이 시각에 주차된 차량에서 건설 장비를 꺼내는 노동자들이 보인다. 아파트형 공장을 신축하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이다. 원청은 창대산업개발. 그 협력업체인 KC가 이들을 고용하고 있다.

건설현장에서만 뼈가 굵은 목수 황금모 씨(57). 19살에 시작했다고 하니 벌써 35년이 훌쩍 넘은 세월이다. 그는 건설노조 경기서부건설지부 대의원이기도 하다. 일은 07시부터 시작된다. 2층 건물 공사현장에는 철근, 나무, 파이프 등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10여명의 노동자들이 각자 맡은 위치에서 망치질을 시작한다. 황 씨가 건물 벽 쪽으로 다가간다. 건물외벽 콘크리트 거푸집(폼)을 해체하는 일이다.

아직 뻥 뚫려 있는 지붕으로 공사장 크레인이 자재들을 실어 나른다. 망치질 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한다. 쇳소리, 둔탁한 소리, 명쾌한 소리, 신경 거슬리는 소리까지 종류별로 다양하다. 그만큼 망치는 건설현장의 상징적인 연장이기도 하다. 건설노동자의 복장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복잡하다. 앞쪽에는 망치와 정이 고리에 걸려 있고, 뒤쪽에는 큰 주머니가 있어 못과 줄자 등이 들어있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한 이 공사는 이번 달이면 완료된다고 한다. 건물외벽과 기둥 등 골격만 잡는 작업이어서 그나마 빨리 끝나는 공사에 속한다. 물론 이 일이 끝나면 함께 했던 작업자들이 자기 일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될 것이다. 넓은 공장 벽을 만들기 위해서는 조각별로 조립시킨 큰 틀이 필요하다. 이것이 거푸집이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붓게 되면 48시간(양성) 후 외벽은 완성된다. 건물은 이렇게 처음 태어난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은 오밀조밀하게 틀을 만드는 작업에 몰두한다. 거대한 틀은 조각별로 된 개개의 ‘폼’을 통해 조합된다. 폼과 폼은 뒤쪽에 철핀을 통해 고정된다. 폼과 폼 사이로는 콘크리트를 잡아주는 철핀이 들어간다. 물론 콘크리트에는 철근이 얼키설키 들어가게 된다. 또 건설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비계’다. 작업자들이 올라서서 폼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설비다.

황 씨는 동료인 김 씨와 함께 폼 제거작업에 나선다. 외벽 바깥 폼 제거작업은 위험해 보인다. 외벽 비계에만 몸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 아래는 낭떠러지다. 건너 쪽 현장에서는 얼마 전에 한 노동자가 작업하다 떨어져서 크게 다친 일도 생겼던 터다. 비계 ‘아시바(파이프)’에 걸터앉거나 둥근 파이프 위 발바닥에 신경이 몰리는 것은 당연. 이 때문에 허공에서 아시바 사이로 발판을 대고 못을 박는 것도 건설노동자의 중요한 일이다.

하루에 몇 톤씩 들었다 놨다 하는 고달픔

동료인 김 씨는 말을 못 듣고 못 하는 장애인이다. 하지만 작업에는 지장이 없어 보인다. 기자에게 황 씨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아마도 ‘최고’라는 뜻인 것 같다. 작은 몸집의 김 씨에게 ‘폼’이 무겁게 느껴진다. 폼(65×900×1200mm) 1개의 무게는 대략 20kg이나 된다. 물이 스며들고 콘크리트가 묻어 있어 무게는 그 이상이다. 이를 노동자들은 하루에 수백 개씩 들어 나른다.

“과거에는 합판으로 썼다가 언제부턴가 ‘폼’으로 바뀌었다”고 황 씨는 언급한다. 합판 사용 시 콘크리트가 터져 나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설노동자들에게는 ‘골병’의 원인인 셈이다. 이곳 6m높이 건물 1개 층의 외벽만 해도 폼은 800개가 넘는다. 기둥골조까지 따지면 1천여 개에 육박한다. 이를 10여 명이 담당한다. 황 씨는 “하루에 한 노동자가 몇 톤씩 들었다 놨다 한다”고 귀띔한다.

9시쯤 간식이 지급된다. 간단히 허기를 채우고 황 씨는 다시 비계에 올라선다. 목수들이 다들 차고 다니는 끝이 꼬부라진 ‘정’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연장이다. 폼의 틈을 벌리거나 철사를 묶거나 구석진 곳 못을 박을 때 보조로 이용하기도 한다. 황 씨는 지상으로부터 10m가량 높이에서 비계용 통로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다. 6m의 폼을 올리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설비다.

기자가 비계에 올라서보니 흔들거림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10m는 가장 아찔한 높이로 통한다. 동료 김 씨가 사각파이프와 합판 등을 나르느라 땀을 쏟아낸다. 비계 통로는 폼을 올려놓기 위한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김 씨는 알맞은 길이의 나무가 없어 톱질도 한다. 톱질이 예사롭지 않다. 꽤 굵은 나무의 톱질이 순식간에 완료된다. 황 씨는 갈증 때문인지 잠시 내려와 통째 2층 현장에 올라와 있는 생수를 들이킨다.

동료인 김 씨가 합판을 올리는 모습을 보고 황 씨가 한 소리 한다. 위에서 팔이 닿지 않아 힘들기 때문이다. 올리는 쪽도 마찬가지. 바닥에 단을 만들어서 작업하라는 얘기를 손짓으로 전달한다. 드디어 10m 높이에서 30m 난간통로가 1시간여 이상의 작업 끝에 만들어졌다. 허공에 길이 생긴 셈이다. 이제 작업자가 그나마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어 조립할 폼이 하나둘씩 이곳으로 이동된다.

“노조가 생겨 투표 반나절 유급”

공사현장이 점점 ‘폼’으로 사방이 높은 병풍처럼 둘러쳐진다. 그만큼 노동자들이 품을 들인 결과다. 그 품은 건설노동자들의 근육과 피와 땀이 어우러진 것이다. 그만큼 그들의 에너지가 투여되고 소모됐다는 증거다. ‘진짜’(건물, 콘크리트외벽)를 얻기 위해 ‘가짜’(비계, 폼)로 먹고 사는 노동자들인 셈이다. 그 가짜는 건설노동자들을 산재와 직업병으로 안내하는 대체물로 작용하고 있다.

11시20분경 흐리던 날씨가 걷힌다. 아직 지붕이 없어 햇빛은 요란한 망치소리 향연에 끼어든다. 노동자들은 폼을 맞추고 위치를 잡기 위해 폼을 벌리며 작업에 여념이 없다. 폼과 마주하고는 망치와 정을 번갈아가며 허리춤에 끼우는 동작을 반복한다. 비계용으로 쓰일 파이프묶음들이 크레인으로 속속 현장에 들어온다. 폼이 허공에 만들어진 통로에 올려 질 때마다 비계는 흔들린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더욱 흔들릴 것이다.

폼은 그야말로 ‘폼’에 불과하다. 유용한 진품이 되기 위해서는 폼(틀)을 벗어나야만 한다. 폼이 높이 올라갈수록 일은 힘들어지기 마련. 10m 높이의 비계 파이프 사이로 들어 올리는 폼은 평지보다 몇 배나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폼은 외벽만이 아니라 건물기둥을 둘러싸는 데도 꼭 필요하다. 목수들의 망치는 가정용보다 자루가 가늘고 긴 편으로 머리도 작은 편이다. 가볍긴 하겠지만 그만큼 숙련이 필요해 보인다.

12시 점심시간이다. 건설노동자들의 휴식공간도 현장이다. 휴게실용 탈의실로 쓰이는 컨테이너 박스가 있지만 몇 명 있기 불편하다. 이곳 노동자들은 9일 총선 때 오전 반나절만 일하고 투표에 참여키로 했다. “작년에 노조가 생기고 나서 반나절 유급이 생겼다”고 황 씨는 말한다. 그 이전에는 선거 날 투표하러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들이 일당을 팽개치긴 쉽지 않다”며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임금체불도 이곳에서는 별로 없는 편이다. “노조에 가입하고 나서 조합원 체불임금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한다. 체불되더라도 책임소재가 분명해진다는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변변치 못한 현실로 봐선 아직 현장 많은 곳에서 체불임금에 시달리고 있음이다. “예전에는 건설노동자들 임금이 10, 15일치로 나가서 체불돼도 한 달을 넘기지 않았다”며 “지금은 ‘쓰메끼리’(유보임금) 때문에 한번 체불되면 45~50일, 길게는 두 달이상도 체불되게 된다”고 황 씨는 덧붙인다.

‘비계’와 ‘폼’을 오르내리는 철인들

이곳 현장 작업자는 20여명이다. 이 중 조합원은 10명, 나머지는 비조합원이다. 목수 외에 철근공과 잡부도 있다. 오후1시 다시 작업이 재개된다. 폼 설치작업은 대체로 열흘 정도 소요된다. 해체는 이틀 정도. 황 씨의 망치질은 주로 왼손이 한다. 양쪽 손을 다 쓴다는 그는 분명 노동달인 이상이다. 철골기둥, 거대한 폼벽, 비계 등 모든 구조물들이 아직은 흔들리고 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건설노동자들의 숙련된 노동이 있기에 완벽한 구조물로 곧 태어날 것이다.

황 씨는 얇은 밧줄에 갈고리를 묶는다. 최상단에 조립될 폼을 올려주기 위해서다. 간단한 작업 자재들도 이 밧줄을 이용한다. 외벽 폼 작업은 쌍으로 행해지게 된다. 그 사이로 콘크리트가 들어가기 때문. 이에 내벽 쪽 폼 작업을 위해 비계작업이 또 필요하다. 김 씨는 상단 폼 뒤에서 핀을 결합시키는 작업 중이다. 작업위치가 비계 파이프 하단 쪽일 경우 허리를 숙여도 잘 보이지가 않아 감각적으로 더듬어 가며 작업을 해야 한다. 망치질도 덩달아 힘들어진다.

황 씨는 조립된 폼의 세세한 부분을 점검하고 교정한다. 연결핀을 갈거나 고정철핀을 폼 사이로 넣는 작업도 벌인다. 김 씨는 때로 비계 파이프를 가랑이 사이로 꼭 감싸 안고 작업을 하기도 한다. 비계 파이프 위에서 중심을 잡아가며 작업하는 일은 평지에서보다 피로가 몇 배 가중될 수밖에 없다. 다른 동료가 김 씨를 보고 “행여 밤에 오줌 쌀라”라며 안쓰러운 듯
내뱉는다.

오후 2시30분경이 되자 현장이 폼으로 사방 갇히는 광경이 연출된다. 마치 거대한 성벽을 쌓아놓은 듯 보이기까지 한다. 창이나 문이 들어갈 곳과 작업자들 통로만이 폼으로부터 제외돼 있다. 애 둘을 두고 있는 황 씨는 아직도 15평 연립에 살고 있다. “애 교육시키기 정말 힘들다”며 “사범대학을 나와도 선생 되지 못해 올해 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황 씨는 이내 철골 기둥 구조물 폼 작업에 들어간다. 준비물 챙기기부터 설치까지 혼자 할 모양이다. 고정쇠핀 한 봉지를 들고 오는 걸음이 왠지 무겁게 보인다. 오후3시경 내벽용 비계가 대충 틀을 갖췄다. 이제 파이프 사이로는 오전에 황 씨가 했던 것처럼 길(통로)이 새로 열릴 것이다. 거대한 폼은 외벽타기용 ‘암벽’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들이 폼의 뒷면 턱을 이용해 오르락내리락 한다.

철근노동자들이 폼 사이에 들어갈 철근을 갖다 주기 시작한다. 이곳에서의 일은 누가 뭐라고 하는 것 없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이다. 부족한 공정마다 착착 다음 단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매일 하는 일이다보니 다음에 뭐가 있어야 될지 다 알아서 하게 된다”고 황 씨는 이유를 설명한다. 매일 ‘통박’이 나와 있다는 얘기다.

“자식이 망치 잡는 걸 원치 않는다”

폼은 사방에서 더욱 위용을 드러낸다. 철근노동자들은 목수와 달리 복장이 간편하다. 허리춤에 찬 허리띠에는 큰 줄자와 쇠갈고리 하나 정도다. 그리고 철근을 묶는 데 쓰이는 철사 다량묶음이 전부다. 철근을 끌 때 폼의 쇠 부분과 마찰하는 소리가 귀를 쨍쨍 울린다. 30여개 씩 쌓여 있는 폼을 하나씩 떨어뜨릴 때 나는 소리와 함께 db(데시벨)의 강도를 높인다.

‘폼’으로 시작해서 ‘폼’으로 끝나는 건설일용노동자들의 노동세계. 정작 그들은 멋진 ‘폼’ 한번 잡을 새도 없이 일에 치인다. 오히려 그들은 인생의 막장, ‘노가다’로 불릴 뿐이다. 황 씨는 건설현장에서 산재로 죽는 것을 두고 “개죽음”이라고 말한다. 비계에서 떨어져 설령 살아난다 해도 대소변 받아내는 ‘병신’으로 남겨질 뿐이라는 얘기다. “그래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까지 토로한다.

정작 사람들이 유용하게 디딜 교량과 건물, 도로를 만들어주기 위해 자신들은 허공의 가상 디딤판인 비계를 밟고 폼을 위해 노동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고가 나고 죽어도 신문방송에는 몇 줄 나오지 않는다. ‘폼’과 함께 건설하는 노동자들. 그들은 어쩌면 건설을 위한 건설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각조각의 폼이 하나씩 모여 전체의 건물을 완성 짓듯, 그들은 이 사회 전체의 틀을 만들어내는 주역임에 손색이 없다.

몸으로 하나씩 움직여야만 할 수 있는 건설현장의 노동. ‘틀’을 짜는 일이 ‘내용물’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습을 현장은 보여준다. 틀을 잘 짜야 내용물도 잘 나올 법. 하지만 그 틀과 함께 한평생을 살다시피 한 그들에게 현재 남는 것은 보람과 긍지가 아니다. “자식이 망치 잡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그들은 솔직히 말한다. 하루해가 ‘폼’ 너머로 뉘엿뉘엿 기울고 있다.

강상철 기자<노동과세계>